[07] 크율 - 同床異夢(동상이몽)

2023. 2. 17. 18:56
타인의 고통이 몰이해의 영역일 뿐이라면,
 
 

 

*
 
 
   새벽이었다. 봄이 온 지도 스무날이 지났건만 급작스레 낮아진 온도로 다시금 커튼을 여몄던 날. 커튼의 틈새로 달빛 희미하게 쏟아졌으나 두꺼운 커튼 덕에 사위四圍는 기본적으로 고요하고 어두웠다. 깜빡. 가만히 눈 감았다 뜨는 소리가 방 안을 천둥처럼 울릴 정도로. 
 
   율리안 레예스의 불면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의 인생에 낮은 지루한 것이었고 밤은 견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도리어 이 불면을 선물처럼 여긴 지도 오래였다는 뜻이다. 구태여 불면에 불만을 가질 이유 없는 삶이었고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기분에 울먹일 나이 지났으니, 남은 것은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관한 것뿐이다. 그리고 율리안 레예스는 그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었다. 시간을 잘 쓰는 것보다 낭비하는 것에 이골이 난 생生이니 오죽하랴. 그렇지만 역시 불을 켤 수도 크게 움직일 수도 없는 방 한가운데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그에게도 조금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있는 것이 싫으냐 묻는다면···. 
 
   율리안 레예스는 시선을 모로 돌려 옅은 숨을 내쉬며 잠에 빠진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분의 온기로 데워진 이불이 따뜻했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이나, 가끔 찡그려지는 미간 따위를 가만히 펴주는 적요한 시간이 감히 싫을 리가 없었다.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가 타인에게 자신의 무방비한 모습 내보이는 것을 얼마나 꺼리는지 안다면 더더욱. 그러니 이런 공간과 시간 공유하고 있는 것 율리안 레예스에게는 마땅히 축복이어야 했으나······ 다시금 일그러지는 미간 슬그머니 문질러주던 손가락이 움찔, 떨린다. 
 
   손끝에 머물던 감각 떼어내고, 율리안 레예스는 핏물 머금은 눈동자를 굴려 방 한 켠 사늘하게 데우는 달빛을 덧그린다. 이기적인 새끼. 습관적인 자학과 비웃음으로 이어지던 생각을 끊어낸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시가 제 속을 헤집도록 내버려 둔 채, 율리안 레예스는 스르륵, 반쯤 덮고 있던 이불 안으로 미끄러졌다. 손끝에 얌전히 시트 위에 놓여져 있던 타인의 손이 맞닿는다. 마치 환자를 돌보듯 그 손 움켜쥐고, 느리게 뛰고 있는 타인의 심장 위에 기도하듯 다른 손을 올린다. 따뜻함 대신 일정하게 뛰는 박동을 자장가처럼 세며, 율리안 레예스는 눈을 깜빡였다. 
 
   손 아래에서 느리게 뛰는 맥박이 오늘도 율리안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스스로도 잘 느끼지 못하고, 가까이 있으면 들을 수조차 없는 이 작은 소음이 단언하건대 율리안 레예스의 전부다. 율리안 레예스는 태생부터 비겁하게 태어났기에, 타인의 삶에 제 삶의 무게까지 매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자랐으니까. 그러나 그런 말들 입 밖으로 내어본 적 없다. 타인에게 매달려 살아가는 삶이기에 가볍기 짝이 없어, 어떤 자국도 남지 않을 생生인데 굳이. 그리하여 율리안 레예스는 그저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의 심장 위에 제 손을 올리고 눈을 감는다.
 
   보호하듯이, 잡아 누르듯이, 매달리듯이.
   타인에게 단 한 번도 무게를 가져본 적 없는 삶이 부디 닻이라도 되길 빌며. 
   
   곧 동이 틀 것이다. 
 
 
  *
 
 
   3월 24일에는 하늘이 맑았다. 
 
   영국의 날씨 답잖게 안온하고 따뜻한 날이었다. 구름이 가리지 않은 하늘은 파랗게 개어있었고 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좋은 날. 남쪽을 향해 창이 나 있는 저택의 침실에도 햇볕이 드리워지고 정원에는 푸른 잎과 색색의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웠다. 창을 열면 희게 핀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방까지 밀려오리라. 고즈넉한 풍경은 말 그대로 그림 같았다.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옅은 잠에 빠진 이의 앓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이것은 정물화쯤으로 취급되었으리라.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그런 풍경 사이에서 눈을 떴다.
 
   깜빡, 새파란 눈동자가 멍하니 천장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밑으로 내려, 저를 죽부인마냥 껴안고 자는 율리안 레예스를 일별했다. 이불과 체온이 엉겨 붙어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해진 온도가 가까운 것이 도리어 잠을 물렸다. 
 
   온기란 때로 타인의 생生을 가장 단편적으로 증명해주는 예시가 된다. 심장에서 시작되는 맥박을 애써 잡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신체 어딘가에 손이 닿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인간다운 온기를 잃지 않았는가로 그 사람의 생生과 사死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제 팔에 닿은 온기는 분명한 삶이다. 조금 빠른 심장 소리나, 옅은 숨소리 따위를 굳이 찾지 않아도, 그 온도만으로도 알 수 있다. 율리안 레예스는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어떠한가?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가만히 손을 들어 제 심장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타인의 손이 이미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위치에 제 손을 겹쳐 올린다. 심장이 쿵, 쿵 뛰고 있었다. 구태여 제 것이 아닌 소리와 온기를 무력하게 더듬으며 삶을 따라가려 애썼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었으면서 미련하게도.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한동안 타인의 심장 소리를 좇다, 얌전히 몸을 일으켜 가만히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그 과정에서 제 몸을 휘감던 남의 팔을 떼어내야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팔을 떼어내는 성의 없는 손길에도 율리안 레예스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 미동도 없는 낯을 내려다보며, 크리스티안은 제가 내지 않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제 것이 아닌 것들에 신경을 빼앗긴다. 그리고 나면 불행하게도 깨닫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균열이자 불협화음이라는 것,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생生과 허무라는 것.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면 제 가슴에 손을 올려보면 되었을 일이지만 그는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눈을 뜨고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삶을 보증한다는 것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제 삶이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을 포기했다. 그의 삶은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 있었다. 심장이 강제로 멎었다 깨어나던 그날에, 숨이 옅어지고 붙잡을 수 없는 어둠으로 굴러떨어지던 날에 이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에서 돌아와 눈을 뜬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그날 이후부터 유령처럼 이 저택에 기거했다. 이미 죽음을 감각해버린 삶을 누더기처럼 이어 붙인 시간을 진정한 삶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하여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고요히 깨닫는다. 잡은 손은 따뜻했으나 그것은 고작 그뿐이라는 것.
   그러니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겠구나. 
 
 
*
 
 
   어느 크리스마스 이후,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의 삶은 무너졌다. 타의로 붕괴된 시간이 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되었다. 무슨 수를 써도 아물지 않고, 내내 조금씩 피를 흘리며 그저 죽어갈 뿐인 상처. 제 호흡에 이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심장 소리를 놓치고, 때로는 다음 순간에 의식이 끊어지길 빌면서도 동시에 타인의 온기를 찾았다. 자가당착적인 마음에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빠르게 소모되었다. 그가 죽음에서 깨어난 이후로 내내. 
 
   정상적인 삶은 아니지.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가 담담히 인정할 때마다 율리안 레예스가 지지 않고 덧붙였다. 
 
   ···그래도 삶이잖아요. 
   돌린 시선으로도 고집스럽게.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저 대신 꽉 쥐어진 주먹에 시선을 두며 불현듯 생각했다. 죽음에서 깨어난 이후, 율리안 레예스의 눈을 마주한 적 있던가? 본능처럼 서늘해지는 뒷목을 무시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왜일까. 왜였을까? 언제나 도망치고 속을 헤집어도 시선만큼은 늘 질릴 정도로 저를 쫓은 주제에, 왜 이제 와서. 
 
   돌아서는 모습이 낯설다. 둘 사이에서 늘 먼저 등을 보였던 쪽은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였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들에 붙들려 제 자리에 서 있는 그를 지나쳐 걷는 것은 언제나 크리스티안의 몫이었다. 그러니 생경했다. 얽매여 멈춰있는 것이 무력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러나 여긴 늪이었다. 타인이 구해줄 수 없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면 그대로 밑바닥까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곳. 크리스티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늪이 자신을 완전히 삼킬 때까지 가만히 관조하는 것뿐. 
 
   그러면, 
   빠져 죽기 전에, 
   
   당신이 끝내줘. 
   그저 천천히 질식해갈 뿐인 삶만 존재한다면,
 
   마지막까지 당신이 해.
   그 삶을 어떻게 끝내느냐만이 내게 남은 선택이라면.
 
   ···왜, 두 번은 못 하겠어?
   16년 만에, 도망치는 자와 남겨지는 자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율리안 레예스는 울고 있었다. 지난한 애원과 비탄이 흐른 뒤였다. 밤 열한 시. 하루가 끝났다 말하기에도, 끝나지 않았다 말하기에도 애매한 시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쥐었기에 그 끝이 형편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그 진동을 제 손으로 느끼면서도, 제가 내뱉은 말을 물리지 않았다. 스스로 끝을 선택하고 확신한 자들이 늘 그러하듯이.
 
   제 손으로 다시 겨눈 지팡이는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았다. 두 번째라서 그런가. 기묘한 감상을 속으로 덧붙이며,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물기로 흐려진 눈동자를 똑바로 직시했다. 처음 죽음으로 굴러 떨어졌을 때에도 울고 있었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도, 지금도, 율리안의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고, 우리에게 남은 선택이란 한 가지뿐이어서. 
 
   그러므로 율리안 레예스는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의 이해자이자 상처였다. 오로지 그만이 그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존재만으로도 상처를 들쑤셨다. 지팡이를 뒤로 빼는 힘이 느껴졌으나 크리스티안은 구태여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율리안 레예스는 결국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삶에 온점을 찍어주는 사람 정할 수 있다면 그건 서로여야 하니까. 크리스티안은 재차 입을 열었다. 네가 해. 순식간에 파르라니 질리는 얼굴을 보면서도, 크리스티안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열려 했다. 비명처럼 쏟아진 가파른 말들이 그 입을 막았다. 
 
 
   "하, 지만. 하지만, 크리스티안···."
   "······."
   "오늘은 네 생일이잖아···."
 
 
   3월 24일은 날이 좋았다. 영국 날씨 답잖게 안온하여, 끝을 내기 좋은 날이었다. 죽음이란 서늘했으므로 이런 날인 것이 도리어 좋다는 것을, 율리안 레예스는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그를 이해시킬 길이 없어, 뒤로 빠지던 지팡이를 다시 제 심장께에 끌어다 대었다. 지팡이를 놓으려는 그 손을 제 손으로 눌러 잡고. 
 
 
   "상관없습니다."
   "······."
   "생일生日이 기일忌日이 되어도."
  
 
   이미 온 삶이 무덤이었다. 그러니 죽음 외에는 의미를 가질 리 없었다. 손 위로 떨어지는 눈물이 뜨거웠으나 그것이 화상이 되기에는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가 얼어붙은 지 오래였다. 한 마디면 됩니다. 사람의 목숨 어그러트리는 것은 그렇게도 쉬우므로. 
   
   율리안 레예스는 악몽처럼 다시 겨누어진 지팡이 끝을 보며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사려 물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빌고 싶은 말도 많았고 애원 역시 많았다. 그러나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상황이 만들어낸 가해자였고, 그러므로 그에게는 감히 크리스티안에게 매달릴 권리가 없다. 삶을 영위하라 빌 명분이 없었다. 삶이 늪으로 변해 발목을 움켜쥐는 감각을 온 생生으로 끔찍해하며 살아온 것이 그 본인이지 않던가. 
 
   하지만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다를 것이라 믿었다. 평생 이해할 수 없기에 평화이고 낙원이던 사람을 멋대로 재단하며 괜찮을 거라 여겼다. 삶에 이질감을 느껴도 곧 견뎌내리라고. 다시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살아가리라고.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타인의 고통은 제 것과 같지 않다. 불행은 각자가 견딜 수 없는 크기로 제각각 변해 삶을 짓누른다.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멋대로 재단해 믿은 결과가 이 꼴이었다. 율리안 레예스는 멍하니 제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빌어보면 어떨까. 아닌 척해도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제 고집에 한 두 번은 넘어가 주니, 차라리 말도 안 되는 억지라도 써보면 어떨까. 제발 알아주면 안 되겠느냐고, 네 삶에 내가 감히 내 삶을 매달았다고. 네 시간에 내 시간을 덧대고, 네 의지에 내 의지도 섞었다고. 그러니 살아달라고, 살아가라고, 살아가자고. 네 삶 어그러진 것 감히 내가 펼칠 수는 없겠느냐고. 이미 매듭지었던 구김이 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아가며 그 구겨진 곳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지 않으냐고,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냐고···. 
 
   율리안 레예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선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율리안 레예스는 숨을 내뱉으며 웃었다. 
 
   통하지 않을 거야. 
   그건 절망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가 무덤 같은 삶이나마 영위한 것이야말로 제 억지로 인한 일임을 되새긴다. 그리고 그 억지조차 이젠 끝이라고, 투명하게 새파란 시선이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율리안 레예스에게는 이것을 막을 힘이 없다. 그리고 막을 권리도 없었다. 떨림이 멎는다. 그제야 크리스티안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제 손을 지탱해주는 힘이 없어도, 율리안 레예스의 손이 정확히 크리스티안의 심장을 겨누었다. 크리스티안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숨을 멈출 듯이. 
 
    율리안 레예스는 타고나길 비겁하게 태어나, 겁쟁이처럼 숨을 죽이며 살아왔다. 삶에 순응하지 못하면서도 그 무게에 깔려 제 손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선택해본 적이 없었다. 몇 없는 선택들마저도,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와 관련된 것들이라면 전부 망치지 않았던가. 스물여섯 해 동안 그렇게 손에 들어오는 것 모두 망가트리며 살았다. 늘 최악과 차악을 손에 쥔 것도 모자라 최악을 고르며, 관계를 모조리 어그러뜨리고서야 맞이한 결말이 이런 것이라면 이것은 율리안 레예스의 잘못이었다.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그에 휘말린 것뿐이고. 율리안 레예스는 천천히 지팡이를 끌어 올렸다. 그의 심장이 아니라 머리에. 그 순간까지도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언제나 너와 관련된 일에는, 최악의 선택지를 골라온 것을 인정한다. 나는 너에게 깨어나야 할 최후의 악몽에 불과하다. 죽음으로부터 깨어나 무엇도 잃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랐는데, 그 깨어남이 늪일 뿐이라면. 영영 잊지 못할 감각을 깨달았기에 삶이 무덤이 되었다면.  
   
   죽음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네 삶이 끝났던 적이 없으면 된다. 네 몫의 불행을 수정하면 된다. 불행의 총량을 정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겠으나 그를 나누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므로. 
 
 
   "···오블리비아테."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몸을 잡아챈다. 괜찮을 것이다. 완벽하고 완전한 마법은 아니어도, 네가 이 불행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 네 불행이 너를 좀먹기 전까지, 네 감각이 너를 다시 늪으로 끌고 들어가기 전까지. 
 
   비록 이것이 네가 원하는 형태의 끝맺음은 아닐지라도. 
 
 
   *
 
 
   타인의 고통이 그저 몰이해의 영역일 뿐이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재어 보며 합리적인 결과를 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기에, 그렇지 않기에. 
 
     크리스티안 라이헨바흐는 눈을 떴다. 어쩐지 머리가 몽롱했다. 방 안은 따뜻한 햇살로 가득했지만, 영국의 날씨란 언제나 변덕스러웠으므로 곧 저 햇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리라. 반사적으로 머리를 짚는 손끝에 온기를 느낀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틈새도 없이, 
 
 
   "잘 잤어요?"
   
 
   목소리가 들리고 눈이 마주친다. 피를 머금은 것처럼 보이는 눈동자는 섬광 같았다.
   그러나 그런 감상조차 안개 속으로 흩어진다. 
 
   완벽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