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선택해 줘서 고마워 - 보이는 것과 부재하는 것

2023. 2. 17. 18:56

휴무: 금일 영업 쉽니다.

 

프레이야 클레멘타인 릴케가 손을 모아 차양을 만든다. 가게의 문에는 정돈치 못한 필체로 쓰인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문틈으로 더운 바람이 들 때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듯 문틈이 흔들려서, 프레이야는 ‘문을 잠그지 않았구나’ 지레 짐작한다. 늦은 저녁의 바람이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공기 울림을 만들고 손님 맞이용 종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그 위로 얹힌다. 일련의 과정이 자아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여름 날 번화가의 중앙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였다. 프레이야가 익숙한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대신 서늘한 가을 공기를 맞으며 유리창 너머를 훔쳐보길 선택한 건.

 

7월 8일. 날짜를 기억하는 건 그게 한 사람의 생일인 덕이다. 가게를 찾아온 프레이야의 손에는 유명 베이커리의 1호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해가 떨어져 날은 뜨겁지 않았지만 불유쾌한 더위는 여전했다. 손 얹은 유리에서 특유의 한기가 올라오고, 프레이야의 숨에 맞춰 유리에는 희게 입김이 서렸다. 도둑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프레이야는 가게 안을 살핀다: 불 꺼진 실내. 선물로 추정되는 소포가 쌓인 바닥. 소파에 덮인 구겨진 흰 천. 탁자 위의 엎어진 커피 잔 하나와, 막 포장을 풀어본 듯한, 포장지 사이의 상자. 늘 자리에 상주하고 있던 주인은 찾아볼 수 없다.

 

‘일을 나갔나.’ 가게 벽면의 시계는 어느덧 오후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다. 프레이야가 아는 그는 다른 날조차 아닌, 자신의 생일날까지 저녁 시간을 넘겨 자리를 비울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퇴근 후의 프레이야에게 〈가게에서 만나자〉고 말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다. 문 앞에는 휴무일을 알리는 글을 적어두고, 약속 상대는 그 바깥에 버려놓은 채 어디론가 가버렸을 리가 없다. 프레이야는 떠올린 가설을 스스로 차근차근 반박해 내며 가게의 문으로 다가간다. 잠가두지 않은 문은, 가볍게 당기는 것만으로 저항 없이 손님을 반긴다. 희미하게 울리는 종소리와 “나 들어갈게?” 프레이야의 말이 합쳐져 겹겹이 쌓인다. 굽 낮은 단화 발소리에도 응답은 없다.

 

조심스러운 말과 달리 주인 없는 건물로 들어서는 걸음엔 큰 주저함이 없다. 이 장소가 프레이야에게도 낯설지 않은 공간인 탓이다. 프레이야는 정돈되지 않은 탁자 위를 쓸어 자리를 내고는 케이크를 올려둔다. 어두워지는 바깥 하늘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어슴푸레한 어둠 사이로, 프레이야는 익숙한 장소를 한 바퀴 둘러본다. 가게 구석에 칸막이를 쳐 만든 작업실에도. 탈의실에도 사람이 없다. 반 층 위, 그의 〈집〉에서도 느껴지는 인기척이 없자 이질감은 서서히 불안으로 바뀐다. “…메이?” 엄습하는 감각을 떨쳐내려 애쓰며, 프레이야는 결국 침입한 가게 한복판에서 그 이름을 부른다. 동시에.

 

탁자 위에 놓인 상자에서, 이음새가 어긋나며. 무언가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그제야 프레이야의 인지 안으로 들어온다. 가로와 세로, 높이가 이십 인치로 균일하고, 겉면에 검붉은 빛이 도는 정육면체 형태의 상자. 가만 둔 채로는 어디를 젖혀 열어보아야 할지 알 수 없겠지만, 지금에서는 상단에 미세한 틈이 생겨 있어 손가락을 걸기만 하면 쉽게 열릴 듯하다. 소파 하나를 사이에 두고, 프레이야는 탁자를 바라보며 이유 모를 〈터무니없는〉 생각을 떠올린다. 오랜 이야기들의 기원에 의탁하여.

 

“설마.” 무심코 입을 연 프레이야는, ‘말도 안 된단 건 알고 있지만.’ 잠시 지나온 날들을 떠올린다. 기적과 축복도 거두어지리라 말하는 시대에. 불가능이라는 말이 진실로 효력을 가지곤 있는 걸까? 있어야 할 사람이 약속을 어기고 사라졌다면. 그건 스스로의 뜻이 아닌 어떠한 현상인 건 아닐까. 떠오르기 시작한 생각은 자의로 멈출 수 없고, 프레이야는 상자로 손을 뻗는다.

 

“거기에 있어, 메이?”

 

프레이야가 기억하는 건 딱 거기까지다. 사람이. 그것도 거의 칠 피트가 되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리 만무한 상자를 들고. 어째서인지 거북할 정도로 가벼운 무게에 이질감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 그 상단을 열어젖힌 것. 새카만 어둠이 꽉 들어찬 내부와 눈이 ‘마주치자’ 잘못 판단했단 걸 알았지만, 뚜껑을 덮기엔 이미 늦었던 것만 같은…….

 

눈을 떴을 때의 프레이야 클레멘타인 릴케는, 그 어둠 속으로 떨어져 있었다.



낯선 장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의외로 두려움 아닌 기시감이다. 언젠가 한 번, 이렇게 적막한 장소에 던져진 적 있었던 듯하다고. 물론 그날의 프레이야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그때의 탑 안은 이렇게나 어둡지도. 또 정적이 흘러 쓸쓸하지도 않았지만. 만들어낸 감각에 의존하고서야 프레이야는 비로소 평정을 되찾는다. 본능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도할 필요는 없다. 공간은 마치 끝이라는 개념을 가져본 적 없는 듯 광활하나 프레이야의 머리 위로는 희게 빛이 쏟아지는 좁은 구멍이 있다. ‘어쩌면 저기로부터 떨어졌는지도 몰라.’ 추측은 확신으로 여겨져, 이제 와 프레이야의 뇌리에는 두 개의 확신과 하나의 결심만이 남는다. 〈의심〉은 진실이 되었으나 되돌아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다. 그러니. “메이, …나 왔어!” 그와 함께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애석한 점이라곤 넓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것이 고작 자신의 목소리 하나다. 돌아오는 답신은 물론, 길을 가늠할 이정표라곤 떨어진 곳에서 내려오는 빛줄기가 전부다. 걷던 길에서 뒤를 돌아보면, 이곳에선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게 될 것 같아.’ 프레이야가 두어 번의 실수로 그것을 깨닫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걸어가고 있는지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수없이 되뇌며, 세 번째로 길을 잃은 프레이야는 자신과 약속한다.

 

‘뒤돌아보지 않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막연한 여정은 체감으로 수십, 수백 분씩 이어진다. 다리의 감각을 잃은 것이 너무 먼 거리를 걸어와서인지, 혹은 바닥으로 삼켜지고 있어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프레이야는 간간이 “메이?” “들리면 대답해, 나야!” “데리러 왔어….” 따위의 말을 내뱉었으나 이제는 그것마저 한계다. ‘어디든 좋으니 앉고 싶어. 쉬고 싶고, 관두고…….’ 노력이 보상받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기를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힘이 풀리는 다리로 주저앉는 순간, 프레이야는 누군가 자신의 팔을 낚아채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프리?”

 

그것이 고대하던 자의 손길임을 깨닫자 결국 ‘울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고야 만다.

 

하나 괴변은 상냥치 못하다. 언제라도 울음에 젖어버릴 듯한 낯을 들어도 프레이야를 반겨주는 것은 익숙한 낯과 상냥한 걱정이 아닌 대단한 이질감이다. 분명 어둠에 길들여졌을 두 눈으로도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새카맣게, 그가 나타난 어느 공간의 일부에 다시 묻혀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 자체가 가지는 부조화. 하여 프레이야는 “왜 여기에 계세요?” 걱정스럽게 건네는 물음에 안도 아닌 불안을, “여긴 이상해요. 돌아갈 방법을 몰라서 헤매고 있었는데…….” 초조해뵈는 상대의 한탄에 안쓰러움보다는 의심을 가진다. 눈앞의 그는. 내가 찾으려던 그 사람이 맞긴 한 걸까?

 

‘안 돼.’ 프레이야는 불현듯 머리와 가슴을 채우려 드는 의혹을 떨쳐내려 자신을 붙든 이의 손을 찾아 쥔다. “메이 말이 맞아.” 여긴 정말 이상해. 이어질 말은 억지로 삼켜낸다. 그러니 이곳에 오래 머물러선 안돼. 널 의심하게 될 거야. 돌아가는 길마저 깜빡 잊고 말 거야. 어쩌면 지금도 이미. 프레이야를 재촉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자신이다. 프레이야는 읽을 수 없는, 새카만 얼굴이 있을 법한 방향으로 웃어 보인다. 그런 단출한 방법이 아니고서야. 프레이야는 이 의심을 떨쳐낼 방법을 모른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프리까지 여기에 오셨어요?” 메이시아는 작은 손을 조심스레 맞잡아 쥐며 묻는다. “상자를 연 것까진 기억해요. 하지만 그게 다인데.” 이런 일에 엮여야 할 이유 같은 건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데……. 그의 손은 긴장이나 불안, 혹은 전혀 다른 무엇일지도 모를 감정 탓으로 소름이 끼치게 차갑다. 프레이야에게 그건 사람의 손을 맞잡은 감각보다는 〈무언가〉와 닿아 있다는 감상만을 준다. 말을 끊고 그를 끌어당긴 건 그래서다. “그런 건 천천히 생각해도 돼. 메이.” 빛이 닿는 곳에 가까워지면 무엇이라도 해결될 줄로 알아서.

 

“돌아가자. 어디로 가면 되는지는 내가 알아.” 이제 와 프레이야는 공간에 흐르는 호흡이 오롯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두렵다.



왔던 길을 빙 둘러 걷는 걸음에는 다급한 감이 있다. 보폭은 감당하기 버겁게 넓고, 금세 가속이 붙는다. 방향을 가늠하지 않고. 혹은 그러지 못하고 걷는 걸음은 발이 닿는 방향으로 뻗어져 되돌아간다는 표현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프레이야가 멈추지 못하는 것은 단지. 자신이 이끄는 게 과연 무엇인지 멈춰 서 확언할 자신이 없는 까닭이다. 추정하기를 실종자인. 메이시아가 “길을 잃어버린 거 아니에요?” 염려하나 답할 수 없다. 끝없는 불행 중 유일한 다행으로. 구태여 프레이야가 그에게 대꾸할 이유는 없다. 두 사람의 걸음이 차츰 느려진다. 눈으로 보일 거리에 출발점이 있다.

출구의 빛은 점점 흐려지며 사라지고 있다. 여유를 부리며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건 누구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프레이야는, 결단을 내린다. “아니야. 보이잖아. 내 뒤만 계속 따라오면 돼.”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앞으로 발을 옮기면, 얽혀 있던 손끝이 서서히 풀어진다. 프레이야는 나아가고 메이시아는 그러지 않아서다. 맞닿은 냉기와 살갗의 감각이 멀어진다. 그를 찾았다는 안도는 한참 전에 가라앉았고, 프레이야에게 남은 것은 말없이 걸으며 쌓은 의심과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전부다. 짜증을 내고만 싶어져서, 프레이야가 마른 목울대를 억지로 울리려 하면.

 

“그런데, 프리.” 손을 놓은 사람이 선수를 친다.

 

“왜 줄곧. 제 얼굴은 봐 주지 않는 거예요?”

 

목소리는 분명 서글프지만, 그것보단 서운함에 잠식된 투정처럼 들린다. 우습게도 프레이야가 확신을 가지는 건 그것을 들은 직후다. 언제나 위기감과는 모호한 거리를 둬 감정이 앞서는, 어른 한 사람의 몫을 해내면서도 언제나 일면은 애 같은. 등 뒤의 존재는 틀림없이 인간이다. 자신이 알고, 되찾으러 온 그 사람이다. 일순 조급함이 치밀어 오른다. 해명해야 한다. 욕망과도 같은 결심이 명령했다.

 

프레이야 클레멘타인 릴케가 뒤를 돌아본다.

 

“오해야,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의 본능은 고작 두세 번의 실수로는 저지할 수가 없다. 사방이 점멸하듯 흔들린다. 깜빡이는 풍광 사이로 메이시아와 눈이 마주친다. 이곳에 와 처음으로. 추방되기 직전에서야. ‘난 그저 조금 무서워서…….’ 아차 싶은 후회가 뇌리를 스쳐도 때는 늦었다.

 

마주한 그에게는 색이 없다. 자신이 잃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시야가 완전히 암전된다.



프레이야 클레멘타인 릴케는 손을 모아 차양을 만든다. 상자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인간의 시야로는 결코 적응할 수 없을 완전한 어둠이다. 프레이야로서는, 그 속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이제 와선 도무지 알 방도가 없다. “메이?” 프레이야의 나직한 호명이 낙하한다. 아래로. 저 아래 깊숙한 곳으로. 간절한 울림은 바닥에 닿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한순간 사라진다. 마침내. 남은 것은 볼 수 있는 것뿐이다: 탁자에 올려둔 케이크. 소파에 앉은 여자. 무릎 위의 상자. 가로와 세로, 높이가 이십 인치로 균일한.

 

그것들 위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완전한 정적이 찾아온다…….